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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trospect

42서울 - 라 피신(la piscine) 후기

 

 

작년 이맘때 운 좋게 1기 1차 교육생으로서 42서울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1년이나 지났지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더 까먹기 전에 나의 후기를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오리엔테이션 - 1일

 

오리엔테이션 행사는 역삼동 GS타워 1층 아모리스홀에서 열렸다. 케이터링, 사전 이벤트에 경품행사까지 행사 규모도 생각보다 컸다.

 

메인 컨텐츠는 교육생들과 멘토님들의 이그나이트(Ignite) 형식의 발표였다. 이그나이트는 15초가 지나가면 다음 슬라이드로 자동으로 넘어가서 20장의 슬라이드를 총 300초(5분) 내로 소화하는 발표 방식인데, 아직 말씀이 다 안 끝났는데 가차 없이 장표가 넘어가버렸다... 이렇게 어려운 발표 형식에도 불구하고 발표자분들은 강렬한 메시지들을 남겨주셨다. 흔히 말하는 '괴물'같은 분들이 계셔서 나같이 코딩할 줄 모르고 평범한 사람이 오는 데가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쨌든 발표자분들의 독창적인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재미있게 들었다.

 

 

 

 

창의캠프 - 2박 3일

 

라피신 진행 직전에 2박 3일간 양평 블룸비스타에서 창의캠프를 진행했다. 인원이 많다 보니 1기 1차 대상자를 3그룹으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나는 마지막 회차인 3회 차 참석했다.

 

첫째 날에는 다 같이 메인홀에 둘러앉아 레크리에이션(?)을 진행했다. 신입사원 연수처럼 테이블을 계속 바꿔가며 앉는 등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랑 말 한마디라도 나눠볼 수 있는 게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처럼 혼자 오신 분들도 계셨고, 학교 친구, 학원 친구들과 같이 오신 분들도 계셨다. 연령대는 다양했고, 비전공자도 많았다. "혹시... 전공자세요?"라는 질문이 최고의 아이스 브레이킹 멘트였다. 

 

둘째 날에는 참석인원을 쪼개서 각 교실에서 조별활동을 진행했다. 프로그램은 재미있었다. 우리 교실에 오신 진행자분께서 준비도 엄청 많이 해오시고 진행을 너무 재밌게 해 주셨다. 이것저것 만들고 제출할 게 많고 2 일차 오후에 시작한 팀 프로젝트를 완성해서 3일 차 오전에 발표를 해야 하는 빡빡한 일정인 것 빼고는 다 좋았다.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학습 동료들은 거의 이때 같은 교실에 있었거나 같은 회차에 창의캠프를 다녀왔다. 같은 교실에 배정되었다고 해서 모두와 얘기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분명 피신 시작 이후 친해졌다고 생각하지만, 무슨 마법의 방처럼 너도나도 이 방에 있었다는 점을 비추어 보면 무의식적으로 친근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덕분에 친해졌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런 점에서 창의캠프는 중요한 행사였다.

 

 

 

 

라 피신 (La piscine) - 4주

 

라피신은 '시작했나?'싶게 시작했다. 출입증을 받고 클러스터(교육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는데 'No Textbook, No Professor' 답게 아무런 지시사항이 없었다. 알아서 해야 했다.

 

 

모르는 게 너무 많았다. 아침에 클러스터로 이동할 때나 밤에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심지어는 자기 직전까지 계속 구글, 유튜브로 관련 개념을 검색해보거나 코드를 어떻게 수정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많았고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안 되는 코드를 계속 붙잡고 새벽까지 클러스터에 남았던 적도 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4시고 그랬다. 새벽까지 남아있는 분들도 적지 않았고, 어떤 날에는 아침 9시 42분에 클러스터에 도착했는데 그때 집에 가시는 분도 계셨다.

 

주일 주말 할 것 없이 하루 종일 클러스터에 있었기 때문에 당시 지원금 산정기준인 인트라 접속 시간을 다 못 채울까 봐 걱정하시는 분은 못 봤다. 출입증이 있어야만 클러스터에 입장할 수 있었다. 출입증을 놓고 오셔서 다시 집에 다녀오셔야 했던 분들도 이따금씩 계셨다. 

 

첫 시험에서 0점을 맞고 터덜터덜 운동장을 걸어 나왔다. 열심히 했는데 단 한 문제도 풀지 못해서 억울함이 컸다. 원래 인생은 불공평하다는 설명으로는 억울한 마음이 달래지지 않았지만 시험 말고도 신경 쓸게 많았다. 감상에 빠질 시간 없이 다음 과제를 준비해야 했다.

 

예정대로 설 연휴에도 피신은 계속되었다. 어떤 식당이 열었는지 slack 상에 공유되었다. 설 당일엔가 저녁시간이 다 돼서 끓인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 대치역의 김밥천국으로 향했다. 불이 켜져 있어서 신나게 달려갔는데 '저희 마감했어요'라는 슬픈 인사말을 전해주셨다. 대치동 일대를 돌며 영업하는 분식집이 하나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결국 대치맥도 옆 편의점에 쪼르르 서서 컵라면을 먹었다. 배고파서 맛있게 먹긴 했다.

 

 

 

 

이렇게 얘기하면 고생만 한 것 같지만 사실 진짜 재미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피신 기간을 같이 보낸 주변 동료들 모두 한 입 모아 피신 때를 '재미있었다'라고 기억한다. 잠이 부족한 채로 반쯤 정신을 놓고 생활해서 그럴 수도 있는데 어쨌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여기 웃으러 오신 것 같다'라는 어떤 동료분의 말씀에 영감을 받아 팀명을 '웃으러 온 팀'으로 지을 정도였다. 클러스터 생활이 재밌으니까 '내가 코딩을 좋아하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설 연휴에는 학장님께서 세뱃돈 봉투를 나눠주시거나, 규칙을 어긴 교육생들끼리 스쿼트를 하는 등 클러스터 내에 소소하고 재밌는 이벤트도 많았다.

 

 

 

클러스터 생활 2주 차에 접어들면서 5층에 c6r6s6처럼 자주 사용하는 자리도 생기고, 화면 분할 단축키도 손에 익었다. 시험 때 꿀이라는 vim 설정도 외워서 써먹을 수 있게 되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잘 적응했다 싶었다.

 

주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렇게 적응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로서로 돕는 분위기였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서로 서슴없이(?) 물어보고 흔쾌히 알려줬다. 서로의 버그에 관심을 가졌다. 혹여나 해결을 못해도 같이 보는 것만으로 큰 힘이었다. 42의 피어 러닝을 실천하며 '교수님' '교장선생님' 등의 별명으로 불리는 교육생 분들도 계셨다. 테스트 케이스를 왕창 공유해주시는 '인간 테케'님도 계셨고, 몇몇 분들은 팬클럽이 생겼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피신 기간을 얼마 안 남았는데 못한 게 너무 많았다. 항상 그랬듯이 초조했다. 마지막 주에는 코로나의 영향을 받아 클러스터 내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알코올 스왑을 통째로 공유해주시는 분도 계셨고 마스크를 못 가져온 분께 마스크를 나누어주시는 분도 계셨다. 나도 이 분위기에 동참해 버블 폼을 가져와 합격의 기운을 불어넣어 보았다. 

 

 

 

코로나 19로 인한 클러스터 폐쇄를 수차례 겪어본 지금, 마스크 없이 서로 얼굴을 맞대고 동료 평가하고 물어볼 수 있었던 좋은 환경에서 라피신 기간을 지낼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끝나고 나니 코딩도 배웠고 몸무게도 빠져있었다. 지원금도 받았다. 27년 지기 (같은)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라피신은 분명 좋은 경험이었다.

 

합격결과 안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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